– 영의 달 – 210화 / 드라마 웹 막장 소설 추천

영의 달 – 210화 / S#1 금성의 집 [밤] ————-
경자 : "나 말고 다른 손님이 또 있는 줄 알았으면 좀 더 넓은 곳에서 보자고 할 것을 내 그 부분까진 미쳐 생각 못했구먼"
금성 : "손님 아니에요. 아는 사람도 아니고요. 갈 사람이에요"
경자 : "지나가는 이름 모르는 사람이라도 사연 있는 사람이라면 말 한마디라도 들어주는 이 집 푼수가 이리 매정하게 구는 걸 보니 주 회장이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구먼. 하긴 미운털이 안 박힌 것이 이상한 건가. 그래 무슨 일로 왔는고?"
성호 : "여사님께서 오시는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경자 : "나한테 죄송할 것은 없지. 그래…(고개를 돌려 집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다시 성호를 지긋이 바라본다.) 저 아이 주 회장 아이인가?"
금성 : "할머님!"
성호 : "………네 맞습니다."
금성 : "아니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봐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내뱉는 거에요?!"
경자 : "쉿. 그래 그랬구먼. 그래서 주 회장 호적에 올린다 말하러 온 건가? 아이는 여기 두고?"
성호 :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경자 : "하나만?"
성호 : "아니요"
경자 : "싹 정리해서 데리고 가겠다는 말이구먼. 그래 당연히 그러고 싶겠지. 언제 알았나?"
성호 : "…얼마안되었습니다"
경자 : "쯧쯧. 알고 나니 속이 뒤집어지던가? 그래서 이렇게 앞 뒤 생각 않고 무작정 찾아와서 무릎 꿇고 비는 것이야? 허 여사가 알면 온몸에 털이란 털이 다 서겠구먼.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무릎 함부로 꿇지 말게. 한번 무릎을 꿇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더 큰 것을 버리고 놓아야 하는 거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성호 : "지금은 제 가죽을 벗겨간다 하면 뼈도 내놓을 심정입니다"
경자 : "그래? 그럼 여기 작은 의류 부속품 공장 하나 돌리는 것도 힘에 겨워 벌벌 거리는 푼수에게 계열사라도 하나 떼어주는 거 어떤가"
성호 : "…그거면 되겠습니까"
경자 : "농담이네 농담이야. 아무리 탐이 난다 해도 남이 일궈낸 것을 함부로 빼앗을 수야 없지. 푼수 떼기 좋다 말았구먼?"
금성 : "지금 농담이 나오세요?!"
경자 : "주 회장"
성호 : "네"
경자 : "아무리 그래도. 병원에 드나드는 것도 아닌데 100일도 안 된 갓난애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게 할 수는 없네. 그렇다고 100일이 지나면 무조건 보내주겠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인간으로서 할 도리를 하겠다는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고, 자네도 자네 행동에 책임을 져야겠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버려둔 거나 다름없는 아이를 몰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제 와 마음대로 취할 순 없지. 그건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날강도나 다름없지 않은가?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보게. 이 집의 누군가는 온몸에 수분이 말랐어. 바늘로 찔러도 나올 피가 없을 정도로 살갗과 내장이 들러붙어 있는 시간을 보냈어. 그 시간 동안 자네는 뭐했나. 동네에 소문이 다 날 정도로 밤낮으로 술이나 들이키고 주정이나 부리지 않았어?
자네도 나름 마음아픈 시간을 보냈다고 변명할 생각은 말게. 자네가 아무리 통곡의 시간을 보냈더라도 자기 자신의 기준일 뿐 그 누군가가 메말라간 시간보다 덜 고통스러웠을 테니 말이야.
이제야 물 한 모금 마시면 마시는 데로 온몸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는데 또 상처를 줘야 하겠나? 호적에 올리는 것도 필요 없으니 더는 찾아오지 말고, 서로 모르고 살아가자 결정하면 알겠다고 하게. 그게 자네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거야.
‘보호’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자네 마음대로, 자네하고 싶은 데로 하게 해달라고 빌고 애원하는게 아니라, 이쪽에서 무슨 결정을 하든 받아들이는 것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무심했던 자네 행동에 관한 책임을 지는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했을 거라 생각하네"
성호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하여 책망하거나, 따끔하게 충고를 받았던 날들은 아득한 기억 속 저 너머로 사라졌었는데
영이의 관련된 행동에 대해서는 윤혁도 경자도 성호 자신을 타박하기만 한다.
경자의 말을 사실 틀린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와 자신이 무슨 염치로 영을 마음대로 휘두른단 말인가.
일기장 속에서밖에 설움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던, 서럽고 외로운 싸움을 할 때 멀리서라도 바라보아주는 것조차 해주지 못했는데 무엇을 빌미로 은하를 내어달라 하는가.
미안함은 더 깊어지고,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졌다.
영의 앞에서, 은하 앞에서 성호 자신은 무의미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자 : "무슨 일이 있거든 나에게 연락하게나. 이리로 찾아와 괜히 무릎 잘리지 말고. 나는 이제 때 놓치기 전 밥을 좀 먹어야겠네. 태석아 배웅하고 들어오너라"
성호 : "아닙니다. 결례가 많았습니다."
성호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자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린 금성을 몇 초간 바라보다 현관문 밖을 나섰다.
태석은 성호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1층까지 따라 내려왔다.
태석 : "담배… 태우시겠습니까?"
성호 : "배웅은 이제 그만"
태석 : "(자신을 앞질러 걸어가기 시작한 성호의 뒷모습을 보며) 이영씨… 많이 힘들었습니다."
성호의 발걸음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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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은 현관문이 닫히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서야 한숨을 깊게 내쉬고서 성호가 앉아있던 의자에 앉았다.
금성 : "아휴 머리야…시장하시죠? 금방 식사 차려드릴게요"
경자 : "방에 있나?"
금성 : "네, 제가 못 나오게 했어요. 나오라고 할까요?"
경자 : "마음 정리해서 보내"
금성 : "네? 아니… 저 사람하는 짓을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세요? 저거 다 쇼하는 거에요. 저런 집에서 영이, 아니 보물에 태어난 거 정말 모르셨을 거라 생각하세요? 다 알고 있었을 거라고요 저 인간.
알면서도 모른 척 쌩하니 있다가, 고민해보니 아까웠던 거겠죠 자기네 핏줄. 아들 하는 꼬락서니 보니 새장가 들어 대물림하기 힘들어 보이니 아쉬워도 어째? 울며 겨자 먹기로 불쌍한척하면서 쇼하는 거에요"
경자 : "쯧쯧. 하여튼 죽기까지 생각하고 말하는 건 못할 모양이구먼"
금성 : "제가 틀린 말했어요?"
경자 : "아무리 동성애 바람이 불고, 사람들 시선이 변한다고 해도 과부와 미혼모 딱지는 인색한 게 이 나라야. 특히나 지금은 아무 상관 없어도 나중에 학교 들어가고 여기저기 서류 떼어 다니기 시작해봐.
사별한 것도 아니고 넘 들은 다 있는 '부'라는 칸에 빈 곳이 있는 거 얼마나 서러울지 애 처지에서는 생각 안 해봤어? 저 지위에, 저 능력에 여기까지 찾아와서 무릎을 꿇는 거 쉬운 일 아니야. 자기 자존심만 생각하지 말고 뭐가 애를 위한 일인지 생각을 해.
아들이 아니라 아비가 와서 제 새끼라고 하는 걸 보니 억지로 애들 다시 엮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야.
훗날 영이가 마음 변해서 나는 새 출발 할 테니 아이 잘 키워주시오 해도 순순히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인거지
지금이 50~60년대도 아니고 애 키우는데 한두 푼 들어? 이제 막 시작한 사업이 망할지 잘될지 어찌 알고 애를 무슨 수로 키워내. 받아주는 그늘이 있다면 기대야지. 애만 들고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 달라는 거니 천천히 마음 정리해서 보내"
금성 : "지금이야 보물이가 어리고 엄마 손길이 필요한 때이니까 영이까지 데리고 갔다가. 애가 다 크면요? 어느 정도 컸을 때 영이 버림받으면요. 그럴 생각으로 데리고 가는 거라면요? 그럼 우리 영이 불쌍해서 어째요. 저라고 마음 편하겠어요?
혼자서 아이 키울 생각할 영이 생각하면 제 마음도 찢어져요. 그런데 저 인간뿐만 아니라 저 집 인간들을 못 믿겠다고요. 모르셔서 그래요 저 집 사람들이 얼마나 악독한 사람들인지 모르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라고요!"
경자 : "나한테 말하지 못한 말이 있나 보구먼?"
금성 : "네? 아니 뭘…"
경자 : "그저 이혼하고 나온 조카가 불쌍해서, 이혼시킨 사돈이 미워서라고 하기엔 응어리가 많이 져 있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어른들 처지에서가 아니라 내 증손주 입장에서 생각하고 결단내리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이모할머니가 애 앞길에 방해가 안 되었으면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