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의 달 – 202화 / 드라마 웹 막장 소설 추천

영의 달 – 202화 / S#1 금성의 집 [밤] ————-
성호가 떠난 이후 영에게 버릇이 하나 생겼다면 바로 은하에게 '공주님'이라고 부르게 된 것 이였다.
금성은 '보물'이라고 불렀고, 영은 그저 '아가'라고만 불렀는데 성호를 따라 '공주님'이라고 부르면 혹시 울음을 빨리 그칠까 해 따라 하게 된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은하는 아무리 공주님이라 애타게 불러도 가끔은 온몸이 자지러질 듯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게워내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점점 더 예민해 지는듯했다.
영 : "네 할머니 제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요"
영 : "어, 이모 나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 다 보고 조심해서 와"
이따금 걸려오는 경자와 금성의 전화도 황급히 끊을 수밖에 없었고, 젖병만 흔들어도 손목이 잘려 나갈 것 같았다.
거실 한쪽 성호가 사용하고 간 이부자리를 정리하지 못했다.
먹은걸 다 눈물로 배출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쓰러울 정도로 짜증을 부리는 은하를 끌어안고 같이 숨죽여 울다 그 이부자리에 은하와 함께 누우면 성호의 냄새가 어렴풋이 났다.
가을낙엽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듯, 그렇게 은은하게.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은하도 성호의 이불 위에서 다독이면 금세 잠이 드는 것 같았다.
이날 따라 한밤중 기저귀 테이블을 정리하는데 오른쪽 손목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항상 손목에 붕대를 감고 지냈는데, 어디서 풀어진 걸까?
온 집을 뒤져도 붕대는 보이지 않았다.
영 : "마지막이었는데"
금성이 귀국하는 날 집에 오는 길에 붕대를 사다 달라 이야기해야겠다 생각하며 바운서에 있는 은하를 안아 들려고 하는데 오른손이 멈춰버렸다.
다행이 왼손에 힘을 주며 은하를 끌어안았기에 아무런 일이 없었지만, 영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은하가 놀라여 달래주는데 한참이 걸렸다.
자신때문에 은하가 다칠뻔했다는 것에 속상해 은하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삼켰다.
영 : "미안해 우리 공주님 엄마가 미안해"
그저 평소와 다른 없는 하루 중 손목이 아팠을 뿐인데, 잠깐 저릿한 손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을 뿐인데 은하가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그래서 은하가 다치기라도 했다면…상상하기 싫었다.
영이 아기였을 땐, 누가 돌봐줬을까 그땐 경자의 집에 있었으니 진형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은성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겠지?
경자가 사람을 붙여준다고 했을 때 알겠다고 했다면 , 낮에라도 스스로 몸을 충분히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손목도 덜 아프고, 은하에게 이런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그저 금성과 함께 은하를 예쁘게 키우는 것만 생각했는데, 사랑을 듬뿍 주며 넌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라고 속삭여줄 생각을 하며 행복했는데 현실을 너무나 차가웠다.
또 다시 성호의 이불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다.
컴컴한 집안에서 진동으로 해놓은 휴대전화가 알람으로 화면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면을 보니 성호의 문자가 1시간 전에 와있었고, 은하의 밥을 준비해야 한다는 알림이 울리고 있었다.
'문 앞에 은하 선물'
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코를 훌쩍거리며 소독기에서 은하의 젖병을 챙겨 밥을 먹일 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작은 상자를 손에 든 성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자는 1시간 전에 와있었는데, 언제부터 여기 서 있던 걸까.
성호는 영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손을 뻗어 눈물 자국을 닦았다.
성호 : "왜 그래, 왜 울었어. 마음아프게. 무슨 일 있었어?"
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안으로 뒷걸음질치자 성호는 앞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성호 : "왜 그래 응?"
성호가 현관문안으로 온전히 들어서자 영의 휴대전화의 알람이 울리고 때맞춰 중탕기도 완료되었다.
성호 : "내가 할게, 잠깐만"
성호가 급하게 신발을 벗고 들어와 겉옷을 식탁의 자에 걸쳐두고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와 중탕기에서 젖병을 꺼내놓은 뒤,
기저귀 테이블에서 손수건 한 장을 꺼내 어깨에 얹혀 두고 선 방으로 들어가 은하를 안아 들고 나왔다.
젖병이 너무 뜨겁지는 않은지 자신의 뺨에도 올려보고 손안에서 한참을 조물록 거리다가 의자에 앉아 은하가 울지 않게 토닥이며 깨우고선 젖병을 입에 물렸다.
어쩌면 온종일 은하와 함께 있는 영 보다 하는 행동이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성호 : "영아, 씻고 싶으면 씻고 나와. 나 은하랑 방에 있을게"
지친육아시간을 보내고, 가족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면 이런 기분일까?
성호가 은하를 안정적으로 잘 돌봐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의 불안감도 없이 영은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고 좌식의자에 앉았다.
뜨거운물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피로까지 적셔주는 기분이였다.
늘어지게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와 젖은 머리로 식탁의 자에 두 발까지 올리고 한껏 몸을 웅크리니 바닥으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팔로 무릎을 감싸고 고개까지 숙이고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고개를 드니 신발장 한쪽에 성호가 가져온 상자가 눈에 띄었다.
의자에서 내려가는 것도 힘이 들어 어떻게든 팔을 뻗어 잡으려고 하는데 성호가 방에서 나와 상자를 들어 식탁에 올렸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새 수건을 가져와 영의 옆에 앉아 수건으로 영의 머리칼을 꾹꾹 눌러 물기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영 : "언제 오셨어요?"
성호 : "얼마 안 되었어"
영 : "문자는 1시간 전에 왔던데"
성호 : "문자만"
영 : "거짓말"
성호 : "머리 말려줄까?"
영 :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말라요 알아서"
성호 : "감기들까 봐 그러지"
영이 대답이 없어도 성호는 영의 머리칼을 만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시계 초심소리만 가득한 이 시간이, 성호 하나만 이 집에 들어왔을 뿐인데.
전쟁 통 같았던 집이 갑자기 포근하게 느껴졌다.
성호의 냄새가 가득했다.
영이 상자 뚜껑을 열다 손목이 다시 삐끗하며 손가락에 경련이 일었다.
성호 : "왜 안 했어?"
영 : "뭐를요?"
성호가 의자에서 일어나 TV 밑 서랍장을 열어 바스락 소리가 나는 비닐 포장된 무언가를 꺼내 들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손목보호대였다.
성호 :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때 넣어두고 갔는데 몰랐어?"
비닐포장을 뜯어 영의 오른쪽 손목에 먼저 채워줬다.
성호 : "붕대를 하고 있길래. 이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영 : "신경을 안 쓰고 있었더니 붕대가 없어진 줄도 몰랐어요"
성호 : "신경을 안 쓴 게 아니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겠지. 은하한테 신경 써야 할게 한둘이 아닌 데 네 몸 신경 쓸 겨를이 어딨겠어. 온통 은하한테 맞춰서 살 거 아니야 매일매일을. 처제가 없으니까 더 힘들지? 남의 손에 안 맡기고 이 정도 하고 있으면 아주 잘 하고 있는 거야. 처음이잖아"
영 : "…힘들어요"
아직도 수건을 붙들고 있던 성호의 손이 멈췄다.
영 : "속상해요. 내가 너무 모자라서 은하를 힘들고 다치게 할까 봐 겁이 나기도 하고 자는 걸 보면 아주 예뻐서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뭔지 느껴지는데 은하가 울 때는 아무것도 해주질 못하니까 나 자신이 너무 무기력해지고 가끔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성호 : "영아, 나 좀 봐"
영 : "오늘은 손목 때문에 은하를 떨어트릴 뻔했어요. 그래서 내 손을 자르고 싶었어요"
성호 : "영아"
영 : "은하한테 잘 해주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성호 : "(손목보호대가 채워진 영의 손을 잡으며) 지금 은하한테는 온통 영이 뿐이야. 영이가 은하의 우주나 다름없어. 영이가 없었다면 코로 숨을 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따듯하게 안아주는 것도 느끼지 못했을 텐데 그런 말이 어딨어.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자책하지 마. 은하에겐 온통 영이 뿐이야.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뭐하나 부족한 것 없이 은하의 세상을 채워주고 있으니까 다른 생각하지 마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아질 거야 알겠지?"
영 : "얼마나요? 얼마나 지나야 나아져요?"
성호 : "당장 내일일 수도 있지? 은하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고 싶은 사람.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 누구일지 생각해봐. 영이지? 은하는 영이를 제일 사랑해"
성호가 영의 옆구리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성호 : "너무 예쁘다. 이리와"
성호가 자신의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영이 고개를 가로젓자 성호가 억지로 영의 몸을 끌어당겼다.
성호의 두 다리에 올라앉자 영은 몸을 성호의 반대로 기울였다.
영 : "머리가 다 안 말랐어요"
성호 : "괜찮아. 안겨"
은하가 아니라 영이 성호의 너른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었다.
성호는 영을 자신의 품 안에 안았다.
성호 :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는 거야"
성호가 영의 등을 두드렸다.
영은 성호의 허벅지 위에서 몸을 돌려 두 다리 가득 성호의 몸을 끌어안고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맡고싶었던 냄새
그리웠던 냄새를 코안가득 빨아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