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의 달 – 196화 / 드라마 웹 막장 소설 추천

영의 달 – 196화 / S#1 고은동 J.U.자택 본관 [낮] ————-
밤낮없이 성호와 수현이 술 때문에 싸우는 소리로 집안은 시끄러웠고, 성호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모두 지쳐갔다.
윤혁 : "아…"
술에 취해 침대를 벗어나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거나, 계단에서 잠이 들어 출근하는 윤혁을 놀라게 하기도 했고,
새벽녘 '보화야'를 외치며 맨몸으로 대문 밖을 나서려는 걸 수현이 겨우 붙잡아 침대에 눕혀 놓기도 했다.
그렇게 엉망으로 살아가던 성호의 정신을 다잡아준 건 다름없음 윤혁이였다.
씻는것도 잊어버리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지저분한 용모를 보이고선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침대 옆 테이블에 앉아 벌써 포도주를 여러 병 비워낸 성호의 방에 윤혁이 들어섰다.
수현 : "어 퇴근했구나. 오늘도 고생했어"
윤혁 : "형, 인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아버지는 혼자 두시고요"
수현 : "후우…너라도 제정신이라 다행인 거 알지? 그래도 어쩌겠냐, 나까지 포기하면 우리 회장님 진짜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사실 것 같은데. 미안하다. 너도 챙겼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네"
윤혁 : "전 신경 쓰지 마세요"
윤혁은 방으로 깊숙이 들어와 성호의 건너편에 앉았다.
성호는 자신의 바로 앞에 앉은 윤혁을 신경 쓰지도 않고, 포도주를 반쯤 흘려가며 잔을 채웠다.
성호가 손을 덜덜 떨며 입으로 가져가는 술잔을 윤혁이 뺏어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술잔을 그대로 손바닥으로 내려치자 잔이 깨지며 유리파편이 윤혁의 손에 박혀 테이블 위에 포도주와 피가 뒤섞였다.
수현 : "윤혁아!"
윤혁은 성호를 바라보며 유리파편이 박힌 손의 주먹을 더 꽉 쥐며 피를 더 내었다.
그런 상황에도 성호는 입을 반쯤 벌리고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윤혁 : "제가 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을 것 같으세요? 저라고 속이 편할 것 같으세요? 영이 씨가 그랬죠. 엄마한테 진 빚 갚을 수 있으면 갚아보라고, 뭘 해야 할지 생각은 해보셨어요?
엄마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게 저라면, 아버지가 절 지키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 아버지 앞에서 다친 절 보고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시네요.
전 엄마한테 미안해서. 내가 정신 못 차리고 아버지처럼 살아가면 속상하실까 봐 어떻게든 정신 부여잡고 살고 있는데!
아버지는 제가 찢기고, 피가 나고 숨이 막혀도 그저 본인 생각에. 본인 생각만. 본인 아픈 것만 생각하시나 보네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에요. 모든 걸 다 해주는 것 같아도, 정작 앞에서 사람이 이렇게 다쳤는데 보지도 못하는.
술은 왜 드세요? 술을 드시나 안 드시나 형편없는 사람인 건 똑같은데. 저도 그냥 떠날게요. 아버지는 곁에 사람이 있으면 안되는 것 같아요. 곁에 있는 사람이 떠나야 소중함을 아시는 분이시니까요. 아버지는 비록 엄마를 잃으셨지만, 제가 있었잖아요. 저는요? 전 영이 씨도 잃고, 아이도 잃었어요. 저보다 더 비참하고 힘드세요?"
울먹이는 윤혁의 목소리에도 성호는 반응이 없었다.
수현 : "윤혁아 일단 병원부터 가자. 손바닥 다 찢겼겠어. 가자"
윤혁 : "됐어요 형. 겨우 손바닥 찢어졌다고 죽지는 않아요. 엄마가 선택 잘한 거에요. 만약 엄마가 계속 이 집에 있었다면 아버지 때문에 무너졌을 거에요.박보화씨의 선택이 옳았어요."
'보화'라는 단어에 성호의 귀가 움찔거렸다.
그것을 윤혁이 눈치챘다.
윤혁 : "박보화씨 선택이 옳았다고요. 박보화씨가 죽어서도 지키고 싶어했던 게 주성호가 아니라 주윤혁이라서 다행이라고요. 왜냐하면, 박보화씨가 사랑으로 남기고 간 아들이 이렇게 아파하는데 주성호 씨는 아무런 신경도 안 쓰시잖아요. 만약 저에게 아버지를 부탁하고 갔다면 전 미안해서라도 뭐라도 했을 거에요."
윤혁이 '보화'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일부러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성호가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들더니 변기를 부여잡고 속에 있던걸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 뒤를 윤혁이 따라가 주문처럼 계속 성호 뒤에서 말을 읊었다.
윤혁 : "나중에라도 하늘에서 박보화씨를 만나면 당당하게 이야기하세요. 남기고 간 아들을 키우긴 했지만, 사랑으로 보듬어주지는 못했다고. 술에 취해 사느라 아들 살이 찢기고 피나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고. 한평생 당신을 그리워하고 마음에 품고 사느라 아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성호가 고개를 들어 윤혁을 올려다보았다.
성호 : "윤혁이…"
윤혁 : "네, 박보화 아들 주윤혁이요"
성호 : "내 아들…"
윤혁 : "네, 저예요"
성호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윤혁을 끌어안았다.
성호 : "윤혁아, 네 엄마가…미안해…내가 미안해…"
윤혁 : "형, 제가 손이 이래서. 아버지 옷 좀 입혀주세요. 운전도 좀 부탁할게요"
수현 : "어?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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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혁은 대충 눈에 보이는 유리조각을 손바닥에서 떼어내고 구급함에 있던 붕대로 감았다.
아직 여전히 비틀거리는 성호를 차에 태워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틈틈히 갓길에 정차하고 여전히 술을 게워내는 성호의 등을 두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성호는 완전히 뒷좌석에 뻗어버렸고, 윤혁은 보조석으로 자리를 옮겨탔다.
윤혁 : "죄송해요 형. 제가 아까 한잔 마시지 않았으면 부탁 안 드리는 건데"
수현 : "괜찮아. 너 손 그대로 있어도 괜찮겠어? 돌아오는 길에 병원이라도 들리자"
윤혁 : "아버지가 정신 차리시면요. 잠깐 편의점에 좀 들려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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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내달려 도착한 곳은 은성과 진형이 있는 추모원이었다.
윤혁은 이곳에 영과 함께 온 적이 있었다.
윤혁 : "내리세요"
윤혁은 뒷문을 열고 쓰러져 누워있는 성호를 끌어내렸다.
성호는 수현의 부축을 받으며 어두운 추모 원의 길을 한참이나 걸어 올라갔다.
드문드문 놓여있는 보조 등과 가로등을 지나며 윤혁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한 그루의 나무 앞에 멈춰 섰다.
영과 금성이 걸어두었을 리본이 어느새 낡아있었다.
빛바랜 가족사진과 밝게 웃고 있는 은성의 사진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윤혁은 나무를 쓰다듬었다.
윤혁 : "두 번째네요…저는…"
윤혁은 땅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손으로 골라내며 평평하게 하고,
편의점에서 사온 종이컵과 소주 한 병 그리고 컵 과일을 꺼내 바닥에 내려두고 종이컵 한가득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두번…
찬바람을 맞으며 성호는 조금씩 눈을 떠가기 시작했고, 두 번째 절을 하며 일어나지 못하는 윤혁의 등을 바라보았다.
성호 : "윤혁아"
윤혁 : "(성호가 보지 못하게 눈물을 닦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아버지도 하세요"
성호 : "뭘 하는데, 여긴…"
윤혁 : "엄마예요. (종이컵을 비우며) 오세요. 술 제가 따라 드릴게요"
성호의 숨통이 막히며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윤혁 : "얼른 오세요"
수현 : "…형…"
제자리에 굳어버린 성호를 수현이 다독이며 자리에 앉혔다.
윤혁 : "절하시라고는 말씀 안 드릴게요. 그런데 얼굴 좀 만져보세요. 엄마가 알아볼 수 있으려나. 지금 … 엄청나게 꼴불견이에요"
성호의 손에 종이컵을 쥐여주고 술을 한잔 따라주었다.
성호는 손을 떨며 종이컵을 바닥에 내려두고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윤혁은 그런 성호를 바라보다 바로 옆 나무로 자리를 옮겨 이번엔 과자 한 봉지,빵, 소시지 등을 꺼내 뜯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똑같이 종이컵에 술을 따라 놔두고선 절을 두 번 했다.
윤혁 :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제가 그냥 골랐어요. 엄마…잘부탁드려요."
윤혁은 사람의 어깨를 다독이듯, 나무를 다독였다.
윤혁 : "엄마만 부탁해서 죄송해요. 영이 씨는…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온 힘을 다해볼게요…죄송합니다…"
그렇게 윤혁은 한참을 나무를 다독였다.
뒤를 돌아 아직도 무릎을 꿇고 엎으려 일어서지 못하는 성호의 옆에 앉아 나무를 향해 다신 손을 내밀어 보였다.
윤혁 : "엄마, 이거 보세요. 이거 아버지가 이렇게 만든 거에요. 혼내주실 거죠?"
성호가 한가득 눈물이 고여있는 눈망울을 하고선 윤혁을 쳐다보았다.
성호 : "너, 손이 왜 그래"
윤혁 : "엄마 보셨죠. 아버지가 이래요. 엄마가 계셨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제가 밥을 먹는지, 다쳤는지 신경 하나도 안 쓰시고 (고개를 저으며) 생각하기도 싫다. 엄마가 좀 혼내주세요. 흠씬 두들겨 패주시면 더 좋고요"
성호 : "손 좀 보자. 이리 내봐"
성호가 팔을 뻗어 윤혁의 손을 덥석 잡자 오히려 윤혁이 다른 손으로 성호의 어깨를 잡았다.
윤혁 : "아버지"
성호 : "…"
윤혁 : "엄마 보고 싶으시면 언제든 만나러 오실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인제 그만 정신 차리시고, 지금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뭘 가장 하고 싶으셨을지. 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실지 생각 좀 해보세요. 그게 아버지가 하셔야 할 일이에요."
성호는 한참을 은성의 나무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나무를 만져보거나 쓰다듬어보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모습을 윤혁과 수현은 조용히 뒤에서 지켜만 보았다.
이후 성호는 다시 원래의 삶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병원에 들러 윤혁의 손을 치료할 때도 옆에서 어깨를 잡아주었고,
집에 도착해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면도를 하였다.
그리고 윤혁보다 먼저 일어나, 수현을 깨워 운동을 다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