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의 달 – 192화 / 드라마 웹 막장 소설 추천

영의 달 – 192화 / S#1 고은동 J.U.자택 본관 [밤] ————-
누군가에는 맹독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선 영은 성호의 방을 나서 2층으로 올라가 윤혁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의 옷가지들을 몇 가지 챙겨 1층으로 내려왔다.
성호의 방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이름표를 만지작거리던 윤혁이 문뜩 정신을 차려 거실로 나와 현관문으로 향하는 영의 팔을 잡았다.
윤혁 : "잠깐만요. 그냥 이렇게 간다고요? 아니, 안돼"
영은 매몰차게 윤혁의 손을 떼어냈지만, 순간적인 반응과 다르게 한 손을 올려 윤혁의 어깨를 쓸며 눈을 맞췄다.
영 : "윤혁씨"
윤혁 : "네"
영 : "이건 꼭 기억해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윤혁씨의 잘못은 하나도 없어요. 윤혁씨는 사랑 속에서 태어났고,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되요. 윤혁씨 잘못은 하나도 없어… 알겠죠? 그러니까 너무 큰 슬픔 속에 빠지진 말아요.
(윤혁의 뺨을 만지며) 어머니는…엄마는 윤혁씨를 너무너무 사랑했을 거에요. 너무 보고 싶고, 아껴주고 싶고…앞으로도 행복하길 바랄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가 슬프지 않게 앞으로도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아줘요"
성호 : "잠깐!"
어느새 거실로 뛰쳐나온 성호가 한 손엔 은성의 옷가지를 들고 영의 양쪽 어깨를 잡았다.
성호 : "안돼 이렇게 보낼 수 없어!"
영 : "난 엄마가 아니에요. 내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야.그리고 내가 여기 있을 이유? 단 한 가지도 없어요"
윤혁 : "달이는…달이는요!"
영 : "(성호의 손을 내치며) 태어나서는 안 되고,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아이에요. 태어나면 어떻게 할 건데, 나는 엄마고 아빠는? 엄마의 아빠가 다른 오빠라고 해요? 아니면 이 아이한테도 속여요? 아빠는 없다고? 그렇게 키워지길 바라요? 절대 안 돼. 앞으로 찾지도,찾아오지도 마세요.
우리의 악연. 여기서 끝내. 여기서 더 이어질 이야긴 없어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길 바랐다면 처음부터 잘했어야지. 처음부터 엄마를 지켰어야지. (윤혁을 바라보며) 윤혁씨 정신 차려요. 그리고 엄마 실망하게 하지 말아요. 자기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지키고 싶어했던 건 윤혁씨야. 이걸 잊지말아요."
성호 : "안돼…안돼…"
또다시 무너지는 성호를 지켜보며 영은 가만히 몇 초간 윤혁과 눈을 마주치다 뒤돌아 나왔다.
큰소리가 날 만큼 현관문을 닫고, 대문 밖을 나서며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성호처럼 자신의 몸에서도 연기가 흘러나오는지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 것처럼 한걸음 걸을 때마다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갑자기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챙겨나온 옷을 어깨에 두르고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다 경자의 집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고민 없이 인터폰을 눌렀다.

영의 달 – 192화 / S#2 고은동 경자의 집 [밤] ————-
당연히 응답이 없을 줄 알았으나 그 어떤 대답보다 확실한 대답인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은 더욱더 차가워지는 바람을 이겨 내려 한껏 몸을 움츠리며 경자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두운 거실에 뜨개 모자를 쓴 경자가 연기가 나는 찻잔을 손에 쥐고 앉아 있었다.
영은 터덜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영 : "몸은…좀 어떠세요"
경자 : "여기서 더 아파도, 덜 아파도 마지막 가는 날은 변화가 없을 그 정도다"
영 : "죄송해요…"
경자 : "무엇이?"
영 : "뭐…든지요. 작은 아빠 일도 그렇고…"
경자 : "진성이 일은 내가 포기한 거니 사과는 되었다. 내가 준 기회까지 저버린 녀석이니 나도 더는 마음쓰고 있지 않아. 그리고 네 인생에 관한 거라면 나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다. 네 인생, 내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도움 줄 것도 아니니 말이다"
영 : "우리 엄마…얼마나 미우셨어요? 얼마나 싫으셨어요?"
경자 :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는다.) 내가 싫어했을 거라 생각하니?"
영 : "네, 당연히요…. 저 였어도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 같았단 생각이 들어서 할머니를 이해해보려고 해요"
경자 : "밉긴 했지, 하지만 싫진 않았다. 아마 진형이가 데리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계속 끼고 살았을 수도 있어"
영 : "미운 사람인데도요?"
경자 : "이제 와 이런 말 하면 무얼 하겠느냐만… 같은 여자로서 안쓰러운 점이 많았다. 생활력 강하고 자기 가족 지킬 줄 알았지만 자기 몸,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는 아이였어. 자신을 냉혹하게 대하다간 나중에는 가족을 지킬 힘까지 모두 소진할 수 있다는걸 몰라 매사에 안쓰러웠다.
내가 냉혹하게 굴면 진형이한테 안길 줄도 알고, 시집살이시킨다며 푸념이라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저 속으로 삼키고 밤이 늦도록 주방에 혼자 앉아 울었다. 그게 제일 마음에 안 들었어. 그래서 일부러 진형이 앞에서 호통도 치고, 잔소리도 했는데 되려 진형이가 참지를 못했지"
영 : "아빠는… 엄마를 많이 사랑하셨을까요?"
경자 : "그러니 이집에 어미도,동생도 어찌되든 놔두고 나가기로 마음먹었겠지. 네 엄마를 만난 이후 진형이는 자기 가족이 나와 진성이가 아니라 너와 네 엄마라고 깨달은 것일 거야. 그래서 섭섭하지 않았다.
남자라면, 자신이 커왔던 가족과 자신이 지켜야 할 가족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 말이다. 그리고 분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진형이를 믿고 내보낸 게 아니라 네 엄마를 믿고 내보낸 것이었다. 혹여 진형이가 가장 노릇을 잘 못해도 네 엄마라면 가족을 이끌었을 거라 믿었으니까"
영 : "…아빠가 죽은 게…저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경자 : "그렇다면 어찌하려고. 네가 이 집에 들어와 내 아들 노릇이라도 하게?"
영 : "원하신다면요…할머니가 원하신다면 그렇게 할게요"
경자 : "나보고 그 아이가 태어나면 보모 노릇하라는 이야기로 들리는구나?"
영 : "아이는…태어나지않아요"
경자 : "흠. 그 집과 완전히 정리하고 나온 모양이구나. 정말 정리를 할 줄도 몰랐고, 이렇게 빨리 할 줄도 몰랐지만 너로서 보면 잘 된 거라 생각해라. 지금은 편안해 보여도 그 집 여자들 때문에 아마 제 명에 못 살았을 것이야. 3대,4대로 회사를 물려주겠다며 너도 값어치를 하라고 어디 가서 돈을 가져오라고 했을 거 뻔해. 그 정도면 잘 버텼다. 잘하고 나온 것이야. 사람을 사람이 아닌 값을 메겨 보는 족속들이다."
영 : "저도 이 아이처럼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존재였을까요"
경자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영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목각인형 같아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경자 : "너 지금 네 결혼생활 끝났다고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아 이런 한심한 소리를 하는 것이냐? 왜. 네가 안 태어났음 내 아들이 오래오래 살았을 것 같아? 네가 지금 당장 요절이라도 하면 내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니? 그럼 지금 당장 혀를 깨물고서라고 죽어라, 내 앞에 너보단 내 아들이 앉아있는 게 나도 훨씬 좋으니 말이다.
어찌 뱃속에 아이를 품고서 그런 말을 해. 한심하긴 쯧쯧. 누굴 닮아 이러나. 네 엄마였음 더 악착같이 살아보려 노력하느라 1분 1초를 아까워하면서 살았을 텐데 쯧쯧 어찌 마음이 이렇게 약하고 여려. 이 세상을 무슨 강단으로 살아가려고. 모자라다 모자라. 네 엄마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라. 이런 애를 두고 어찌 그런 허망하게 갔나 아이고"
경자의 말에 영은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영 : "만약 할머니가 우리 엄마를 안쓰러워하셨다면, 엄마도 그 마음은 알고 계셨을 거에요. 그래서 아빠한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혼자 삭히 신거겠죠. 이상하게 할머니 말에 기운이 나요. 저 사실 할머니께 너무 죄송했거든요. 이모도 그렇고…아빠도 떠난 게 저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경자 : "그 집 푼수 떼기가 입을 또 잘 못 놀렸나 보구먼. 우리 집에 종종 시주하러 오시던 스님이 내가 아들이 둘이라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첫째아들이 자식과 인연이 없어서 첫 번째 자식을 보게 되면 2년 안에 둘째를 꼭 보거나, 둘째가 안 생긴다면 최소 10년은 자식을 세상밖에 꺼내지 말라 하더구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더니 몇 달 뒤 네 엄마를 데리고 왔지.
그리고 귀신같이 네가 태어나자마자 진형이냐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뇌막염으로 입원까지 했어. 애 보느라 힘이 들어 그런 줄 알았는데 1년을 꼬박 앓아있는 자식을 보니 반신반의하더구나. 몸이 아파 네 동생은 꿈도 못 꾸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년만 내 품에 끼고 살자 생각했거늘 내가 진형이 심기를 건드린 것이지"
영 : "제가 많이 미우셨겠어요"
경자 : "처음엔 내 자식 잡아먹으러 온 사자인가 싶어 동자승을 만들어 10살까지 절에 있게 할까 했는데, 그 스님이 다시 오셔서 그러시더구나. 양자이든, 옆집에서 훔쳐온 도둑 씨앗이든 진형이가 자기 자식이라고 스스로 자각을 하는 순간 자식과 아비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니 아비가 원하면 자신의 절로 널 데리고 가겠다고 말이다.
그 말인 즉 슨, 10살 난 아이를 입양해왔어도 20살까지 10년은 숨겨놓고 살아야 할 팔자라는 말이었지. 스님이 널 데려가겠다 하니 그때야 진형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구나. 넌 진형이에게 그런 존재였어. 자기 몸이 부서져도 품에 안고 살아야 하는 아이"
영 :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하아…"
진형은 영을, 은성은 윤혁을 그렇게 사랑했을 것이다.
은성이 영을 자식으로서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영을 먹이고, 입히며 윤혁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어쩌면 윤혁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영에게 쏟아부었기에 금전적으로 부족해도, 심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풍요로운 나날을 보냈을지도 모른 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