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의 달 – 187화 / 드라마 웹 막장 소설 추천

영의 달 – 187화 / S#1 고은동 J.U.자택 본관 [밤] ————-
영이 거리낌 없이 윤혁의 앞에서 성호를 챙기기 시작하자 집안의 분위기도 삽시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영은 방안에 있는 시간보다 거실에 있는 시간을 늘렸다.
윤혁이 먼저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면 겉옷을 받아주고, 1층으로 내려가 성호의 가방을 들어주거나 윤혁은 씻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성호가 낮에 잠시 집에 들릴 때도 점심은 먹었는지, 밖에 날씨는 어떤지 물었고
저녁 식사 후 각자 방으로 돌아가려는 두 남자를 붙잡고 거실에 앉아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항상 서재에서 책을 읽던 성호도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TV를 보는 영과 윤혁의 옆에 앉아 책을 보거나,
책을 내려놓고 팔짱을 낀 채 아무 말 없이 무표정으로 함께 시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도 나름의 원칙을 지켰다.
식탁에 후식으로 과일이 올라오면 한 조각을 집어 윤혁의 입에 먼저 넣어 준 뒤, 성호에게 건넸다.
그리고 무엇이든 윤혁에게 물었다.
영 :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저녁 먹고 산책을 다녀오고 싶은데 회장님께도 가실 거냐고 여쭤봐도 될까요?"
윤혁 : "저녁 먹으면서 여쭤보죠! 뭐"
그럼 윤혁이 먼저 식사 도중 성호에게 물었다.
윤혁 : "저희 저녁 먹고 큰길까지 산책 다녀올 건데 같이 가실래요?"
성호 : "…나?"
윤혁 : "네 아버지요"
성호 : "…그래 그럼"
성호를 대하는 윤혁의 행동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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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 어디서 무얼 하든 항상 왼쪽엔 윤혁이, 오른쪽엔 성호가 있었다.
한가로운 주말 영이 거실에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양희가 심신안정에 좋다며 추천해준 프랑스자수세트를 테이블에 펼쳐놓고 한 땀 한 땀 집중하고 있을 때에도 성호는 노트북을 들고 나와 있었고, 윤혁은 잡지를 읽었다.
영 : "앗 따가워. 아휴…"
성호 : "윤혁아 휴지"
윤혁 : "네?! 아이고 영이 씨 손 이리 줘요"
성호 : "그만하면 안 될까? 오늘만 해도 몇 번째야. 손가락 열 개가 다 남아나질 않겠어"
윤혁 : "그래요 영이 씨. 그만 해요. 이런 거 하지 않아도 다른 거 할 거 많잖아요"
성호 : "뜨개질이 차라리 났겠어"
영 : "뜨개질은 자신이 없어요"
성호 : "바느질은 자신 있고?"
영 : "헤헤 그래도 많이 늘었어요. 한…한달만 기다리시면 제가 진짜 예쁜 자수 선물할게요"
하루하루가 평화로웠다.
항상 어딘가 모르게 찬바람이 불던 고은동에는 집안 가득 온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의 생각보다 윤혁은 성호만큼이나 영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챙기는 사람이었다.
낮시간을 이용해 영이 허미의 병문안하러 다녀온 날 저녁을 먹으며 허미의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영 : "간호사 선생님들 말씀으로는 점점 차도가 좋아지시는 것 같으시데요. 물론 완전히 의식을 찾으셔야 하겠지만, 의사선생님들도 긍정적인 봐도 좋은 신호가 있다고 하셨다고 하시고요"
윤혁 : "영이 씨 할머님은 다음 주에 퇴원하실 거예요"
영 : "그걸…"
윤혁 : "우리 결혼식 때도 왔었는데, 할머님 입원해계신 병원에 지인이 있어요. 그 지인한테 부탁해서 항상 연락 받고 있었고요. 다행히 큰 수술로 이어지진 않아서 영이 씨한테 따로 이야기는 안 했어요. 신경 쓰여 할 것 같아서"
영 : "고마워요…"
윤혁 : "가벼운 뇌진탕 정도셨고, 생각보다 출혈이 많았는데 그건 찢어지신 부위가 많으셔서 그랬던 거래요. 정말 다행이었다고. 하필이면 머리 쪽을 다치셨다고 해서 저도 걱정했거든요. 입원하신 날 바로 치료받으셨고, 그 뒤로는 계속 요양 중이셨데요."
영은 마음이 숙연해졌다.
경자의 상태가 어떤지, 어느 병원에 있는지 찾아보고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현재의 삶 속에서 경자는 까맣게 잊혀 가고 있었다.
성호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성호 : "이진성 씨…재판은 다음 달로 정해졌어"
윤혁 : "연락받으셨어요?"
성호 : "응 오늘. 가서 방청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윤혁 : "시간이 되시면 아버지가 같이 가주세요. 영이 씨 혼자 보내는 건 내키지가 않아서요"
성호 : "그래 그렇게 할게"
영 : "…안갈래요. 안 가고 싶어요. 안…보고싶어요. 할머니가 또 작은 아빠를 위해서 잔뜩 변호사단 꾸리셔서 어떻게든 가장 약한 처벌을 받게 하실 텐데 그런 모습 보고 싶지 않아요"
성호와 윤혁이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윤혁 : "그럼요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도 되는 건데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그럼 재판결과만 알아봐요 나중에. 아버지가 또 연락받으시면 알려주실 거죠?"
성호 : "응 그럼 나중에 또 소식 전해 오면 알려줄게. 밥 먹어 식겠다"
그날 밤 영은 윤혁과 함께 잠이 들려 하였으나 심란한 마음 때문인지 잠들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1층으로 내려왔다.
불 꺼진 거실. 보조등만 밝히고선 성호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영 : "아직 안 주무셨어요?"
성호 : "응 이리와 앉아"
영은 성호와 한 뼘 떨어져 앉았다.
성호 : "기대"
영은 성호의 한쪽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가, 떨어져 있던 한 뼘의 거리도 좁혀 앉았다.
성호가 영의 손을 잡고 따듯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성호 : "안가겠다고, 보지 않고 싶다고 했지만, 마음은 또 그렇지가 않지?"
영 : "보지 않고 싶은 건 맞는데 혹시나 해서요. 정말 혹시나 죗값을 다 못 받을까 봐요. 아니 제가 생각한 것보다 죗값이 적을까 봐. 저한테는 정말 이젠 가족이 아닌 원수인 사람인데. 100년 1,000년을 감옥에서 산다고 해도 제 마음이 풀어질까 말까 할 것 같은 데.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잘난 모정 때문에 너무나 적은 형량을 받으면…아빠 억울한 거 다 못 풀어주는 기분으로 살아갈 것 같아서요"
성호는 영의 손을 쓰다듬어주던 자신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성호 :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아버님께 할 만큼 다 했어. 영이 아니었으면 이진성은 어딘가에서 또 다른 사람을 해쳐서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고, 아버님께서 단순히 영이 혼자만 남겨두려고 그렇게 떠나신 게 아니라는 거. 그 마음을 영이냐 알아차렸다면 편안하실 거야. 충분히 할 만큼 다했어. 네 몸 상처 내가며 할 수 있을 만큼 다했어. 잘했어"
영 : "그런 걸까요…아빠가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성호 : "당연하지. 더는 영이 네가 다치거나 마음 아파하는 것도 바라시지 않을 거야. 그리고 강 여사님은 이진성 씨에게 변호사를 선임해주지 않았어"
영 : "그게 정말이에요?"
성호 : "아마 하루,이틀 치료받으시고 구속수사에 대해서 들으셨다면 도와주실 생각이라면 바로 변호사들을 보내셨겠지 경찰서에. 하지만 재판일정이 잡힌 오늘까지 선임된 변호사는 이진성 씨가 직접 의뢰한단 한 명이었어. 아마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겠지. 자세한 건 나중에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다. 다만…"
영이 고개를 들어 성호와 눈을 마주쳤다.
성호 : "내가 알아본 바로는… 아버지의 사건으로 처벌은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
영 : "어째…서요? 제가 가져온 물건에 아무것도 증거가 남지 앉아 있었데요? 그렇데요? 근데 왜 재판이"
성호 : "몸에 상해를 입힌 건 입증할 수 있지만 직접적인 사망요인이 아니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는 마. 정말 노력할 수 있을 만큼 다 했잖아"
실망감과 허탈함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영을 성호는 따듯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괜찮아'라고 계속해서 귓가에 속삭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