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의 달 – 180화 / 드라마 웹 막장 소설 추천

영의 달 – 180화 / S#1 강원도 [낮] ————-
성호의 하루는 해가 뜨기도 전에 시작했다.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손아귀 안에, 자신의 품 안에 누워있는 사람이 사라지는 악몽은 이제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아랫니가 보였다.
영이 깨지 않게 조심히 침대를 빠져나와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수건 한 장만 손에 쥐고서 운동을 했다.
30분쯤 지났으려나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자 현관 밖으로 나가 달리기를 할 마음이었으나
침대 위 잠들어있는 작은 온기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깨어나 없어진 자신을 찾으려 밖으로 나올까 걱정되어 거실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최대한 약하게 물을 틀어 고양이가 세수하듯 몸을 닦았다.
수압을 약하게 틀어놓은 탓에 보일러가 작동 중임에도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한기를 느낄까 다시 침실에 들어섰을 때 온몸을 주무르며 몸에 열기가 다시 오르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팔베개를 해주곤 자신도 다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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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대 위 무선충전기에 올려져 있던 휴대전화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진동과 함께 무선충전기에 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휴대전화가 화장대 상판 유리를 넘어 의자를 지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분명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놓았는데 알림이라니 성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달그락 소리에 영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선 급하게 침대를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진 상태로도 열심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있는 휴대전화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성호 : "우리 당분간 통화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수현 : '세상 편한 소리 하시네요. 어젯밤에도 먼저 전화 하셔 놓고선.제가 전화를 몇 통이나 했는데. 이 정도면 무슨 일 있구나 하고 한번 받아주시면 되는 거 아니에요?'
'무음으로 해놨는데 같은 번호로 전화가 연속으로 걸려 오니 긴급전화라 생각하고 진동이 울렸구나'라는것을 성호는 그때야 깨달았다.
사람이 만들어낸 기계일 뿐인데, 이 기계도 입력된 코딩으로 긴급과 긴급이 아님을 분간하려 하는데
인간인 자신은 그저 온 세상을 무음으로 만들어놓고 그 속에서 모든 것을 등지고 있었다 생각하니 기분이 떨떠름했다.
성호 : "전화가 오는지 몰랐어"
수현 : '그럼 지금은 어떻게 받…어쨌든요.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네요'
성호 : "무슨 일 있어?"
수현 : '무슨 일은 엄청나게 많은데 제가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 크게 신경을 쓰실 것 없고, 나중에 치하해주시면 되는 거고요. 윤혁이 때문에요.'
성호 : "윤혁이가 왜"
수현 : '윤혁이 이 자식이. 아… 죄송합니다. 집에서 독 사과를 먹이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자꾸 코피를 쏟죠?'
성호 : "또?"
수현 : '웬일로 녀석이 차를 타고 출근을 했는지 지하주차장에서 만났거든요. 그래서 아침 인사 겸 어깨를 툭 건드렸을 뿐인데 코피가 줄줄. 의무실에 데려다 놨는데 제가 퇴근하고 병원 좀 데려가 보려고요. 집에 무슨 일 있으세요?'
수현이 이미 영이 퇴원 후 고은동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를 채고 있을 수 있지만,
성호 자신도 수현에게 그 부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고
윤혁 또 따로 이야기했을 가능성은 없었기에 윤혁이 영 때문에 예민해져 있을 거란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성호 : "집에 일 있을게 뭐가 있어. 요즘 회사일이 바쁜 거 아니야?"
수현 : '그런가…. 아무튼 윤혁이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 데려가 볼게요.'
성호 : "고마워"
수현 : '문자 남길게요. 어차피 또 전화 안 받으실 것 뻔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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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끝내고 침실로 들어서자 영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영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게 육감적으로 느껴졌다.
침대 한편에 앉아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한 손에 잡힐 것 같은 영의 발을 어루만졌다.
성호 : "바닷가 갈까?"
영은 이불 밖으로 머리통을 내밀며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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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마트로 나가 바닷가에서 신을만한 어여쁜 슬리퍼를 사주고 싶었지만 매일 신을 것도 아니고, 모래사장에서는 맨발로 있어도 괜찮으니 주인이 없는 신발이라면 신발장에 있는 슬리퍼를 신고 다녀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슬리퍼를 보면 영을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때의 심정이 떠올라 웬만하면 혼자서라도 밖에 다녀오려 했으나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신발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영을 보고선 한숨을 쉬며 성호는 밖으로 따라나섰다.
마당 한쪽에 자세히 보면 길이 나 있는지도 모를 샛길로 바닷가까지 걸어갔다.
성호의 한 손에는 수건, 한 손에는 영의 손이 들려있었다.
누가 봐도 전혀 맞지 않는 슬리퍼를 신고 어기적어기적 걷는 영의 모습은 꼭 아빠 신발을 신고 나온 어린아이 같았다.
모래사장에 도착한 영은 슬리퍼를 벗어 놓고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모래를 느끼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거나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바빴다.
성호는 그런 영을 쫓아다니느라 팔을 이리저리 뻗어야만 했다.
푸릇푸릇한 분위기의 '나 잡아봐라'가 아니라 '가만히 좀 있어봐라' 분위기였다.
겨우 영의 어깨를 잡아챈 성호.
성호 : "약속 잘 안 지키는 편이라는 건 알지만 여기서 지켜야 할, 약속해야 할 것들이 있어"
영 : "(배시시 웃으며) 뭔데요?"
성호 : "바다에 발을 담그는 건 되지만, 발목 이상은 안돼. 그리고 5분 이상 계속 담그고 있어서도 안 돼. "
영 : "음…네!"
성호 : "(영의 뺨을 어루만지며) 대답은 잘하지"
그렇게 성호는 파도가 치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발로 한없이 파도를 즐기는 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호 : '어때 보여? 당신이랑 닮았지? 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웃는 것도. 표정 하나하나 까지 당신을 떠올리게 해. 보여주고 싶었어 어떤 사람인지'
성호의 감시하에 바닷가에서 원 없이 바다에 발을 담그던 영은 웬일인지 성호가 부르기도 전에 성호의 곁으로 돌아왔다.
성호 : "벌써 다 놀았어?"
영 : "밥 먹고 다시 와요. 아직 아침도 안 먹었어요."
성호 : "그래. 그러자. 발 줘"
영이 한쪽 발을 내밀자 성호는 들고왔던 수건으로 영의 발을 닦아주었다.
그렇게 어기적 걷는 영과 손을 마주 잡고 별장으로 가는 샛길에 오르던 도중 영의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성호는 주저앉으며 자신의 손을 붙잡는 영의 손을 천천히 놓았다.
성호 : "어떻게 하라고 했지?"
영이 양 손바닥으로 땅을 짚으며 거친 숨을 내쉬면서 몸을 이리저리 꼬는 게 시작했다.

– 영의 달 – 180화 / 성호의 회상
윤혁이 걸음마를 시작하며 몸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뒤뚱거리며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하던 때.
윤혁의 주변엔 허미와 보모가 있어 넘어지기 전 누가 붙잡거나, 넘어져도 금방 일으켜 세워 울음을 멈추게 하였다.
하지만 성호는 그렇게 아이를 대하는 집안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침일찍부터 정원으로 윤혁을 데리고 나와 돌계단과 보조등 가까이만 가지 못하게 하며 윤혁이 풀을 뜯고 마음대로 걸어 다니게 놔두었던 날.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진 것도 아니고, 돌에 걸린 것도 아니고
모든 아이가 그렇듯 집안에서와 똑같이 중심을 잘 잡지 못해 얼굴을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꽂으며 넘어져 울음을 터트렸다.
성호는 천천히 윤혁의 곁으로 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성호 : "주윤혁 일어나. 그 정도 아픈 건 당연한 거고, 다시 일어서면 되는 거야. 얼른 일어나. 아픈 것도 금방 없어져"
윤혁의 울음소리를 듣고 허미가 쫓아 나왔지만, 성호는 다시 현관문 안으로 들여 보내고 다시 윤혁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아직도 엎드려 울고 있는 윤혁의 등을 토닥이며 울음이 멈추길 기다렸다.
한바탕 울고 난 윤혁은 엎드린 상태로 눈만 끔벅 거렸다.
성호 : "일어나 이제"
성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한참있다 윤혁은 버둥거리며 양손을 바닥에 짚고 무릎도 땅에 짚더니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양손에 뭍은 흙을 조몰락거리기 시작했다.
성호 : "(윤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했어. 넘어지면 앉으면 되는 거야. 그리고 다시 일어나. 할 수 있어?"
성호가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쭈그려 앉자 성호를 빤히 바라보던 윤혁이 자신도 따라 일어나 손에는 흙을 잔뜩 묻히고
눈물,콧물,침과 흙이 범벅된 얼굴을 하고선 성호에게 걸어와 엎어지듯 안겼다.
그 뒤로 윤혁은 집안 어디에서 넘어져도 울지도 않고, 누군가 자신을 일으켜주길 기다리지도 않고, 스스로 자리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밑에서 통증을 이겨내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는 영의 모습에서 윤혁에게 제대로 된 걸음마를 알려주던 때가 떠올랐다.
영의 발보다 컸기에 이미 벗겨져 있는 슬리퍼가 옆에 있어서 일까,
딸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결할수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잘 헤쳐나가고 있는지 지켜보는 아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