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달 – 153화 / 드라마 웹 막장 소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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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달 - 1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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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달 – 153화 / S#1  성호의 회상 (외전 / 그녀1)————-

미 : "공부 하고 있니?"

성호 : "네에"

미 : "성호야.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려면 남들보다 한 걸음이 아닌 열 걸음은 더 움직여야 해. 지금 졸린 건 당연히 참아야 하는 거야. 이따 엄마가 자라고 할 때자 알겠어?"

성호 : "하지만 너무 졸린걸요."

미 : "참아 참아야 되는 거야"

성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허미의 교육관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원어민을 대동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외국어 수업을 하는 것은 물론 집에 가정교사까지 채용해 함께 숙식하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공부에만 열중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렀으며 같은 해 수능을 치러 이름만 들어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교와 학과에 수능 점수만으로 입학했다.

한창 친구들과 사춘기를 겪어야 하는 나이에 성인들 틈에 끼어 대학교 수업을 듣는 성호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등교를 거부하기도 하고, 수업을 모두 듣지도 않고 집으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미 : "이게 다 학교가 잘못된 거야."

하지만 허미는 성호를 챙기기는커녕, 한국이 성호에게 맞지 않아 그런 것이라며 대학교 1학년 생활을 모두 끝내지도 못한 채 유학을 빌미로 외국으로 내보냈다.

성호 : "(불 꺼진 기숙사의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주먹 쥔 손으로 책을 내리친다.)"

외국에서는 더욱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외톨이로 지냈다.
밤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혼자라는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자신만 바라보며 사는 허미와 엄한 아버지가 계셨기에,
그리고 오빠만 좋아한다며 툴툴거리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성호는 남들보다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성아 : "치, 나도 학교 졸업하자마자 회사로 갈 거예요. 왜 오빠만 뭐든지 다 해줘요?"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제대하고선 정식적으로 기업을 물려받기 위한 후계자 수업을 들었다.
아니 이미 일찍이 시작되고 있었을 후계자 수업.

성호는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고, 돈이나 인맥,혈연관계로 얻어낸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어린 시절을 갉아 얻어낸 능력으로 초반부터 사람들의 신임을 얻으며 공식적인 후계자로서 사람들의 우러러보는 시선을 얻기 시작했다.

성호 : "아!"
그녀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른 아침 가벼운 옷차림으로 운동에 나섰던 성호는 자신이 분명 앞에서 걸어오고 있음에도
양손에 한가득 짐을 들고서 뒤를 신경 쓰며 걷는 여자와 부딪혔다.

충분히 자신이 피할 수 있었음에도 '이 사람. 언제까지 뒤만 보면서 걷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피하지 않았다.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비닐봉지가 바닥에 떨어지며 딸기들이 나뒹굴었다.

그녀 : "어, 됐어요. 하지 마세요"

떨어진 딸기를 주워주러 몸을 구부려 손을 뻗는 성호의 손을 그녀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떨어진 딸기들을 오른쪽 봉투에 담고, 왼쪽 봉투는 성호에게 내밀었다.

그녀 : "대학생? 부럽다. 공부하기 힘들죠? 이거 가져가서 먹어요."
성호 : "아니요 저는"

그녀 : "괜찮아요. 아주 달고 맛있을 거에요. 다친 곳은 없죠? 미안해요"
성호 : "저기요!"

운동복 차림과 다르게 쌀쌀한 날씨에도 구겨진 블라우스와 얇은 겉옷을 입고 낮은 구두를 신고 있던 그녀는 성호의 한 손에 딸기가 들어있는 봉투를 건네주고 빠르게 지나쳤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딸기가 가득 들어있는 봉투를 손에 들고 성호는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공원 입구 쪽 허름한 겨울 겉옷을 입은 노인이 신문지와 빨간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정리하고 있었다.

성호 : '여기서 산 거구나'
은은하게 풍겨오는 딸기냄새에 성호는 그녀가 이 노인이 판매하고 있던 딸기를 모두 샀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주름진 손으로 손에 든 지폐를 주머니에 넣는 노인의 손목에는 굵어도 너무 굵다 싶은 금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지퍼를 목 끝까지 채우는 사이에도 목에 있는 금목걸이가 빛을 내었다.

성호 : '단단히 속았군'

집으로 돌아온 성호는 누가 먹던지,버리던지 상관없으니 식탁에 딸기를 올려두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비슷한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성호는 양손 가득 또 비닐봉지를 들고가는 그녀를 보았다.

똑같은 노인이 물건을 판매하려 공원입구에 나오는 날이면 그녀는 항상 양손이 가득했다.
딸기,상추 어떤 물건을 판매하든지 모조리 자신이 구매하는 것 같았다.

비웃으며 지나치길 여러 번.
하지만 그날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는 그녀를 붙잡았다.

성호 : "저기요"
그녀 : "깜짝이야! 어, 그때 그 대학생! 맞죠? 오랜만이에요. 운동하는 거 좋아하는구나?"

성호 : "딸기. 그렇게 좋아해요?"
그녀 : "네? 아 이거 (봉투를 들어 올리며) 싫어하진 않아요. 왜요? 오늘도 한 봉지 줄까요?"

성호 : "그, 아니 딸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튼, 사지 마세요"
그녀 : "왜요? 맛이 없었어요? 이상하다. 괜찮던데 (봉투를 뒤적거린다.)"

성호 : "저분이 불쌍해서 계속 사가는 것 같은데,  현금장사 하시는 분들치고 그렇게 선의를 베풀어야 할 분들 많지 않거든요? 특히나 당신이 매번 이렇게 물건을 사가는 공원입구의 저분도 온몸에는 금팔찌,목걸이로 화려해요. 겉옷을 벗으면 명품 정장이라도 입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녀는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성호의 손을 매몰차게 내쳤다.

그녀 : "그래서요?"

성호 : "그래서…? 아니 속고 있는 거라니까요? 측은지심 가질 필요 없다고요."

그녀 : "저분이 대단한 부자이든 아니든 전 상관없어요.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데 누군가 물건을 사가지 않으면 계속 찬바람 맞으면서 밖에 계시는 건 똑같을 거라고요. 친구 없죠? 그렇게 하나씩 다 따지고 살면 주변 사람들 피곤해요"

말을 마친 그녀는 성호를 밀쳐내듯 어깨로 밀고 발걸음을 다시 빨리했다.
성호는 바짝 뒤를 쫓아갔다.

성호 : "자신의 겉모습을 이용해 상술을 펼친다면 정당한 판매자라고 할 수 없죠. 사람들 속여서 부를 축적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다고요?"

그녀 : "네,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 그런 거 저는 중요하지 않다니까요? 그리고. 내 돈 주고 내가 산 거잖아요! 그쪽한테 돈 달라고 한 적 없거든요?"

성호 : "좋게 표현해서 그런 거지 사기당한 거잖아요. 기분이 나쁘지도 않아요?"

그녀 : "(걸음을 멈춰 세운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당신 때문에 기분이 나빠요. 내가 괜찮다는데 왜 계속 쫓아와서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거에요? 날 언제부터 알았다고? 내가 사기를 당하든, 납치당해서 딸기농장으로 끌려가든 관심 끄고 갈 길가시죠?"

쏘아 붙이는 그녀에게 성호는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그녀를 잊고 살았다.
도움을 주려고 했으나 받지 않겠다는 사람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러 나가던 시간에, 이른 출근을 하기 위해 운전을 하던 성호는 이번엔 공원입구에서 쭈그리고 앉아 노인과 대화를 하며 본인이 직접 봉투에 물건을 담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성호는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성호 : "날씨도 추운데 인제 그만 집으로 들어가시고 웬만하면 밖에 이렇게 나오지 마세요. 아드님 내외분이 안 좋아하실 거예요. 아드님이 박 부장검사님 맞으시죠? 저기 수행기사분 기다리고 계시니까 얼른 정리하고 들어가세요?"

성호는 한참 전부터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다급하게 사람이 뛰어왔다.

수행기사 : "어르신 이제 들어가세요."
노인 : "아니…그…저…"

그렇게 수행기사가 직접 신문지와 여러 집기를 쇼핑백에 챙겨 노인을 데리고 차로 향했다.

성호 : "이제 저분 여기 나오실 일 없을 거에요. 그러니까 당신도 인제 그만 사요. 알겠죠? 가요."
그녀 : "학생이…아니였네요? 어 근데 나는 왜. 이봐요!"

성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차로 데려가 보조석에 태웠다.

성호 : "회사가 어디에요. 데려다 줄게요."
그녀 : "지하철에 내려주세요.그나저나 어떻게 알았어요? 저분 아들이 검사인 거?"

차를 타고 가며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미 그녀는 보통 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시골에 살며 농사지어 자식들을 키워낸 노인이 아들이 성공하며 서울로 모셔와 살기 시작했는데,
도심의 답답함과 자신이 더 늙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생각이 들어 아들 몰래 근교에서 농사지어 가게도 없이 공원 한 귀퉁이에서 자신이 직접 키운 농작물을 판매하고 있었고 그 돈을 모아 기부 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녀 : "비싸게 파시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 하시는 거라 기분 좋게 사는 거였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팔짱을 낀다.)"

성호 : "그렇게 안 하셔도 기부 활동하신다고 하면 아들이 대신 돈 낼 수 있는 사람이에요. 며느리도 돈 많은 집 딸이고요."

그녀 :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저한테도 그렇게 깊게는 이야기 안 하셨는데"

성호 : "금을 휘두르고 다니는 사람인데다 곁에 수행비서까지 붙어 다니는데 뒤 쫓아만 가봐도 어느 집 누구인지 다 알게 되죠. 대충 알면서도 물건을 산 거라니 마음이 참 넓네요. 그 돈 아껴서 본인 옷 한벌 더 사는 건 어때요?"

그녀 : "지하철 타면 더워서 그래요. 어, 여기서 내리면 되는데"

성호 : "데려다 줄게요. 이 근처 살아요?"

그렇게 차를 타고 가며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곧 대학에 들어갈 여동생의 학비를 모으기 위해, 아침에 성호의 집 근처 동네에서 주방일을 하고 출근을 한다고 했다.
자신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부수입으로 아주 좋은 아르바이트라며 손뼉을 치며 이야기했다.

성호 : "참 든든한 언니를 두었네요. 부모님께서도 자랑스러우시겠어요."

그녀 : "아, 저희는 부모님께서 안계세요. 보육원 출신이거든요. 보육원 원장님을 어머니라 생각하고 살긴 했는데, 몇 해 전 돌아가시고 나니까 참 마음 둘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더 악착같이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저는 대학도 못 갔지만 동생은 꼭 보내고 싶어요. 돈 걱정 없이."

빨간불에 멈춰선 성호가 옆을 바라보았다.

성호 : "전화번호 줄 수 있어요?"

그녀 : "왜요?"

성호 : "전화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아서요. 지나가다 딸기를 봤다거나?"

그녀 : "고은동 살죠?"

성호 : "네, 그런데요?"

그녀 : "돈 많은 집 도련님이 그냥 측은지심에 사람 불쌍해 보여서 이러나 본데. 저는 연민 절대 필요 없거든요? 아무튼, 여기까지 데려다 줘서 고마워요."

성호 : "이봐요! 위험해요!"

그녀는 가방에서 오천 원짜리 한참을 꺼내 성호 손에 쥐여주고 정차 중인 차에서 그대로 내려 인도로 올라갔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지하철역 쪽으로 뛰어갔다.

성호는 자신의 행동을 오해한 것 같아 진심으로 사과하려고 비슷한 시간 항상 공원 근처를 배회했지만, 도저히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듯했다.

그렇게 날마다 실망감으로 보내다 맞이 한 어느 주말.
여느 때와 다르게 해가 다 뜨기도 전에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집 밖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던 동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출발해 20분 정도 걷다 보니 분위기가 다른 동네가 나왔고, 버스의 첫차가 정류장에 멈춰 섰다.

입김이 나오는 날씨에 얇은 코드를 입고 맨다리를 드러내고 있는 그녀가 손난로를 손에 꼭 쥐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 : "45번지요. 감사합니다."

그리곤 버스정류장 앞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식료품가게에서 무거운 봉투를 받아들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10분을 걸어 도착한 한 집.

유유히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들어가려는 그녀를 성호가 붙잡았다.

그녀 : "깜짝이야. 어… 어!"
성호 : "할 말이 있어요. 시간 괜찮아요?"

그녀 : "저 지금 들어가 봐야 하거든요? 기다리려면 기다리던지요."
성호를 알아본 그녀가 인사도 없이 성호를 밖에 세워두고선 안으로 들어갔다.

한시간, 아니 두 시간쯤 지났을까
성호의 귀가 빨개져 감각을 잃어갈 때 즘에야 그녀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녀 : "정말 기다리고 있었던 거에요? 얼굴 좀 봐. 손발도 다 얼었겠네 이리와봐요. 진짜 바보인가? 어쩜 이래요?아니 그냥 거절이라 생각하고 가면 될 것이지 날씨가 얼마나 추운데 미쳤나 봐"

곧 눈사람이 될 것처럼 보이는 성호를 데리고 그녀는 처음 만났던 공원으로 데려갔다.
공원까지 가는 길에도 얼마나 화를 내는지, 성호가 어린아이였다면 학원을 빼먹고 놀고 와 흠씬 혼나는 엄마와 아들 사이로 보였을 것이다.

공원 의자에 앉아 자신의 겉옷에 들어있던 손난로를 꺼내 성호의 오른손에 쥐여주고, 왼손은 자신의 양손으로 감싸 입김을 불어주었다.
양손으로 감 쌓는데도 성호의 손가락이 삐죽 튀어나왔다.

금방이라도 치아까지 덜덜 떨릴 것 같았던 성호는 이제 더는 춥지 않았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찌하느냐는 그녀의 투덜거림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 : "그쪽 진짜 대책 없는 사람이네요. 이 날씨에, 이렇게 두꺼운 옷 입고 있다고 감기가 몸 안으로 안 들어오는 줄 알아요?"
성호 : "주성호예요."

그녀 : "네?"

성호 : "내 이름이요. 주성호 라고요"

그녀 : "아, 네…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주성호씨? 환절기 감기가 제일 힘든 거 몰라요? 누굴 원망하려고 그래요?"

성호는 그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기분이 들떴다. 아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발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지만, 지금은 온몸 구석구석 따듯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 : "얼굴이 어째 더 빨개지는 것 같은데? 괜찮은 거에요? 얼른 집으로 가요"

성호 : "(그녀의 손을 잡는다.) 저 오늘 사과하려고 왔어요."

그녀 : "네? 그게 무슨…갑자기 무슨 사과요?"

성호 : "연민 아니에요. 애초에 당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측은지심도 없어요. 하지만 내 말투나 행동이 그렇게 느껴지게 했으면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이 말 꼭 하고 싶었어요. 아, 그리고 찾아다닌 거 맞아요. 우연 아니고 꼭 사과하고 싶고 만나고 싶어서 매일 아침마다 찾아다녔어요. 오늘은 이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버스에서 내리는걸 봤고요. 그래서 뒤쫓아 간 거에요"

그녀 : "사과받아줄게요. 오히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건 아닐까 생각도 했거든요. 고마워요 사과.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날씨에 그러고 서 있는 게 어딨어요. 어디 좀 들어가 있던가. 아니면 전화를 하던가"

성호 : "전화번호. 안 줬잖아요."

그녀 : "아, 그랬지 참…이렇게 춥게 만든 거 저도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주성호 씨"

그렇게 손난로 하나에 서로의 손을 겹쳐 찬바람이 부는 공원에서 둘은 한참이나 이야기했다.

요즘 날씨가 점점 추워져 일하는 집의 배려로 아침마다 운전기사가 지하철까지 데려다 주느라 공원에서 마주치지 못했었고,
일요일 하루만 쉰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음부터 할 말이 있으면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전화를 하려며 성호의 휴대전화기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 뒤 성호는 매일 아침 그 집으로 그녀를 태우러 갔다.

한사코 거절하는 그녀를 태워 회사까지 바래다주고 출근을 했다.
그녀는 매일 재잘거리는 새처럼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일요일은 그녀를 볼 수 없어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했다.

그렇게 한 달 즘 지났을 때, 그녀는 예쁜 봉투에 만 원짜리 10장을 넣어 성호에게 전달했다.
커피도 못 사주고 차도 공짜로 얻어타니 기름값을 보태겠다고 하였다.

회사차이기때문에 기름값도 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무리 회사 차라도 땅을 파면 돈이 나오나며 그럼 성호가 아닌 회사에 빚을 지고 있으니 꼭 회사에 전해달라고 하며 성호의 재킷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성호는 점점 더 그녀에게 관심과 마음이 갔다.

성호 : "오늘 시간 있어요?"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성호는 용기 내 그녀에게 전화하였고, 첫 데이트 신청을 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을 것이라며 꼭 차를 두고 나오라는 그녀의 성화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서점과 떡볶이집을 돌아다녔다.

한주는 서점, 한주는 거리에서 무료 공연을 보며 데이트를 즐겼다.
비싼 음식점도 기름진 고기도 그녀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자연스럽게 손도 잡고 포옹도 하며 정식으로 연애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의 사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어져 갔다.

처음엔 그저 친구처럼 대하던 그녀도 성호의 진심을 알아갔는지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다.

봄비가 내리던 저녁 둘이 처음 만났던 공원 가로등 밑에서 첫 입맞춤을 하였고, 화창한 여름 성호가 사정사정해 당일치기로 떠난 여행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성호도 그녀도 서로에게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서로의 손을 잡고 아름다운 사계절을 한 번씩 겪은 어느 날.

언제나처럼 그녀의 쉬는 날에 맞춰 맞이한 일요일데이트.

왠일인지 그녀는 성호가 원하는 데로 다 해주겠다며, 비싸서 싫다고 했던 음식점에도 함께 가주고 포근함이 가득한 호캉스 제안에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오늘은 늦게 들어가도 된다며, 늦은 시간 까지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녀가 영화를 보고 있던 TV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이미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성호를 바라보았다.

그녀 : "성호 씨…우리 오늘을 마지막으로…이제 그만 해요."

그녀의 입에서 청천벽력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성호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유가 무엇이냐, 자신이 뭘 잘 못했느냐 묻고 또 물어도 그녀의 입술은 열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성호 : "설마, 어머니 만났어요? 우리 어머니 만난 거예요?"

그녀 : "아니요. 그런 일 없어요.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요 내가"

성호 : "거짓말! 난 절대 못 믿어. 지금 당장 전화해서"
그녀 : "그만! 내가 얼마나 지친 줄 알아요? 반짝거리는 당신 옆에서 어둠처럼 서 있는 거 인제 그만 하고 싶다고요!"

성호 : "(무릎을 꿇고 앉으며) 어둠이라니 그런 말이 어딨어요. 내가 반짝거린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그녀 : "말 그대로예요. 잘나도 너무 잘난 집 아들. 그리고 보육원 출신의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나.우린 처음부터 만나지 말아야 할 사이였어요. 이쯤 하면 서로 만날 큼 만났고, 할 것 다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만 해요. 그리고 서로에게 맞는 사람 만나요. 인제 그만 가볼게요."

성호 : "안돼!"

갑작스런 이별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한 성호는 나가려는 그녀를 붙잡았고, 그런 그녀는 성호를 밀쳐냈다.
그렇게 '으악'을 지르며 몸싸움을 지속하다.

서로에 발에 걸려 비틀거리며 성호는 바닥으로, 그녀는 침대 프레임에 골반 한쪽을 부딪치고는 침대위로 쓰러졌다.

그녀 : "아..안돼…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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