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의 달 – 127화 / 드라마 웹 막장 소설 추천

영의 달 – 127화 / S#1 구실동 J.U.그룹 32층 회장실 [밤] ————-
지하와 1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이 꺼진 어두운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32층에 도착한 수현이 벽면에 있는 전등 스위치를 하나씩 누르며 회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현 : "계셨어요? 아니 근데 왜 복도에도, 방에도 불을 안 켜시고"
회장실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수현은 책상에 보조 등만 켜 놓고 앉아있는 성호를 보고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호 :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 쪽으로 이동하며)앉자"
수현 : "눈이 생각보다 금방 피로해진다니까요? 나중을 위해서라도 꼭 불을 켜고 계세요. 첩보영화 찍는 것도 아닌데"
성호 : "내 눈이 침침해져서 모니터 화면도 못 보면 네가 옆에서 읽어주면 되지"
수현 : "이햐, 저 그럼 정년퇴임도 못하는 거 아니에요?"
성호 : "퇴임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수현 : "아,회장님 집에 제 방 하나 만들어주세요. 제가 지금부터라도 모시고 산다~ 생각하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하겠네요"
성호 : "언제든지 들어와. 난 대환영이니까"
수현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성호도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 다시금 표정을 바꿨다.
성호 : "그래, 경찰 쪽에서는 뭐래?"
수현 :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요? 송화경찰서장부터 시작해서 입을 닫고 열지를 않아요"
수현은 두툼한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성호 : "(사진을 집어 들며) 눈치는 못 챘지?"
수현 : "친한 친구가 있다고 둘러댔는데 의심하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게 다 워낙 옛날부터 유대관계가 좋다보니까 의심할수가 없죠. 이렇게 말을 해놨으니 앞으로 경찰서에서 마주쳐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성호가 집어든 사진에는 영과 이음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다른 사진에는 경자의 모습들도 있었다.
수현 :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요. "
성호 : "이상한 일이라니?"
수현 : "지금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단순히 송화경찰서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경찰청장까지 모두 한통속인 것 같던데요? 서장이랑 청장 그리고 이 사람 (사진 한 장을 집어들며)
이 남자가 청장,서장, 그리고 서 내부에 있는 경찰분들까지 고루 만나고 다니더라고요. 식사자리도 많이 만들고, 본인도 직접 참석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단순식사 자리가 아니겠죠. 이 사람이 그 할머님의 직원이라 생각이 드는 인물입니다."
수현이 집어든 사진 속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를 성호가 유심히 쳐다보았다.
성호 : "맞아, 직원"
수현 : "응?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보신 적 있으세요?"
성호 : "응, 오늘"
수현 : "오늘 윤혁이랑 모임 나갔다 오셨잖아요 호텔에. 거기서 만나신 거에요?"
성호 : "일이 좀 있었어. 근데 맞아 확실해"
수현 : "그럼 맞겠네요. 은폐하려고 하는 무엇 가가 있다는 게. 하아… 근데 무슨 사건인지, 무슨 일인지를 알아야지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라도 하죠. 답답하네요 정말"
성호 : "(이음의 사진을 집어들며) 이 사람이랑 대화를 해보는 게 어때"
수현 : "당사자한테 직접 접근해보라고요? 그건 너무 위험하죠. 영이 씨한테 곧바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아님 이 사람 주변 사람들이 저희를 접촉하고 있다는걸 반대세력 쪽에 이야기할 수도 있고요"
성호 : "나랑 만나게 해줘"
수현 : "직접 말씀하시게요? 아니 왜 그렇게 위험한 방법을"
성호 :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지. 물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뻔히 보이잖아.그럼 맨손으로라도 땅을 파야 한 모금이라도 마시지. 남이 와서 파주길 기다렸다간 눈감을 때까지, 혀가 말려 들어갈 때까지 물 한 방울 구경도 못해"
수현 : "그럼 최대한 빠르게 약속 잡아보겠습니다."
성호 : "웬만하면 약속장소를 사람 많은 곳으로 하고"
수현 : "그러다 회장님까지 노출되시면 큰일인데요?"
성호 : "쉽잖아? 사람은 많고, 그 누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 특히 내가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그곳"
수현 : "설마… 아휴 그게 더 위험하죠. 혹시나 이 사람한테 미행이라도 붙어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성호 : "그러니 상황을 잘 꾸며봐"

영의 달 – 127화 / S#2 고은동 경자의 집 [밤] ————-
경자는 홀로 지하실에 서 있었다.
모든 집기를 철거하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지하실.
주방쪽과 연결된 문이 열려있어서 그런지 주방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계단을 타고 지하실까지 흘러들어왔다.
진성이 잔뜩 술에 취해 시끄럽게 굴고 있었다.
진형의 죽음 이후 실음에 빠져 몇 날 며칠을 제대로 눕지도 서 있지도 못하고 있던 동안 진성이라도 만나고 싶어 이리저리 알아볼수록 어둡고, 지저분한 진성의 뒷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비밀리에 수사 중인 사건에 아직도 휘말려 있다는 것을 알고 부지와 건물만 사두었던 경기도의 창고에 진성을 가둬놓았다.
근처의 공장들은 이미 폐업한 지 오래고, 거주지역과도 멀리 떨어진 곳이라 사람이든 그 무엇이든 숨기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맨처음부터 진성을 가둬두는 것이 경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이미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지른 진성이기에 굳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아도 도둑이 제 발 저려 진심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뉘우칠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시작된 수사망이 경기도에 있는 창고 근처까지로 넓혀지고 있었고,
인적이 드문 곳에 출입이 잦으면 꼬리를 밟힐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어 급급하게 전문업자를 불러 비밀리에 지하실을 고치고 진성을 데리고 왔다.
그동안 경자도 진성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태석이 가져오는 파일들을 볼 때마다 아들이 아닌 악마를 낳아 길렀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경자도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진형의 죽음에 진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뼛속까지 느껴졌다.
그 뒤로, 진성의 입에서 진실을 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밥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고, 일부러 약에 취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진성의 거짓말과 연기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피곤해져 갈 뿐이었다.
진성 : "아 노인네 정말. 엄마! 여기에 정이라도 든 거에요? 난 지긋지긋 하구만, 이렇게 뻥 뚫려있으니 내 속이 다 시원하네 그만 하시고 올라오세요 이제"
진성이 큰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생각에 잠겨있던 경자의 얼굴에 인상이 찌푸려졌고,
마지못해 1층으로 올라오니 그사이 식탁에 술병이 더 늘어있었다.
진성은 흥얼거리며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고, 건너편에는 태석이 앉아있었다.
태석 앞에 놓은 술잔은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경자 : "그만 들어가. 이런 놈 이야기는 뭐하러 들어주고 있어 피곤하네"
진성 : "아 내버려둬요 정말. 오늘 나랑 내 방에서 자고 가라고 했어. 나도 혼자 있어서 심심하니까 말동무나 좀 해달라고"
경자 : "숨만 쉬어도 마이너스 인생인 너랑 같니? 어째서 남의 생각은 하나도 안 하는 거야. 이기적인 놈"
진성 : "맞죠 알고 있죠. 우리 태석이 유능한 인재이라는 거. 그러니 이렇게 꼬장꼬장하고 까다롭고 보기만 해도 답답한 우리 강 여사님 옆에 붙어서 일도 할 수 있는 거겠죠. 근데 엄마의 직원이기 전에 내 친구거든요? 내 중학교 동창! 내 멋진 친구! 아하 진짜 얘는 부모님 사업만 잘되었어도 여기서 이러고 있을 애가 아닌데 아깝다 아까워"
태석은 진성과 중학교 동창으로 큰 사업을 하시던 부모님 일을 도우며 살았으나 몇 년 전 큰 부도를 맞아 사업이 모두 무너졌고 큰 빚더미에 올라 병환까지 얻은 부모님을 부양하며 지내다 우연히 경자를 만나 경자의 비서급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경자 : "지금 잘 사는 사람한테 과거의 일을 꺼내 뭐하러 안 좋았던 때를 회상하게 해. 그것도 남에 대한 배려심 부족이다. 네 삶이나 걱정해. 얘 위층에 올려두고 얼른 돌아가"
태석은 경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성을 부축해 2층으로 올라가 진성의 방 침대에 진성을 눕혔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진성을 한참이나 쳐다보다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식탁에 진성이 앉아있던 자리에 경자가 앉아 널브러진 술병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태석 : "제가 정리하고 들어가겠습니다."
경자 : "내버려둬. 아침에 이 여사가 나와서 정리할 거니까 시간이 많이 늦었다. 조심해서 가고"
태석 : "네, 사모님"
경자 : "그리고"
태석 : "네,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경자 : "부모님은 잘 계시지? 안부가 궁금하긴 하지만 물어보는 것조차 실례일까 봐 맘 놓고 물어보지도 못했네"
태석 : "네 사모님 덕분에 아무런 걱정 없이 아직도 치료 잘 받고 계십니다.(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경자 : "앞으로 들어갈 병원비가 수백 수천이라 해도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다녀. 내가 그 정도 못 해줄까. 내가 먼저 죽어도 추후 요양비까지 다 준비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지금 사는 집도 이사할 때가 되지 않았어? 내가 알아보마"
태석 : "아닙니다. 지금 사는 집도 충분합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집 크기나 시설을 신경 쓰시는 분들도 아니시고요. 집,차,병원비까지 모든 걸 다 해주셨는데 더는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경자 : "휴…진성이가 어렸을 때부터 태석이 네 이름을 입에 달고 살았지. 아무리 진형이냐 잘 챙겨주었다 한들, 아비 없이 밖으로 일만 하러 다니는 어미 때문에 부모의 빈자리를 많이 느낀 모양이야.
항상 사이좋은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널 보면서 태석이는 방학 때 부모님이랑 같이 어디 간다더라, 주말에 뭐 먹었다더라 이야기를 많이 했어.
사정을 내가 빨리 알았더라면 더 일찍 도와줬을 텐데 미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진성이 봐주고 있는 게 고마워서 그런 거니 사양말어"
태석 :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요. 정말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자 : "내가 말이 길었구먼 먼저 들어가마"
태석 : "네, 쉬십시오"
태석은 경자가 방에 들어가며 방문을 닫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집을 나섰고, 운전석에 앉아 한동안 옛날 진성과의 추억을 곱씹다 출발을 했다.
